MBA (Tuck & IESE)2013.02.17 09:24

아직 한 학기가 더 남긴 했지만 MBA가 막바지에 이르니 주변으로부터 앞으로의 신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마음의 결정은 내렸는지, 졸업하면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미국에 남는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오는지, MBA과정이 결국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 이러한 모든 질문들에 답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겠지만, 나는 이곳 미국에서의 MBA를 통해 무엇을 얻었냐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련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을 보고 배웠다고.

일전에도 여러 차례 꿈이니, 마음의 목소리니, 하고 싶은 일을 찾느니 라는 소리를 했었는데 그게 대체 구체적으로 무얼까? 나의 2년은 꿈을 다루는 것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한 화제에 대해 조금씩 알아 나가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봐야지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실로 많은 세상의 리더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사실은 마음 한켠에서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들이지만, 또 막상 누가 물으면 쉽게 설득력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생각들과 깨달음과 신념들을 이제는 조금 구체적으로 연결하고 정리해볼까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당신의 인생,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Part I 에 이어지는 글이다. 아래 글을 읽기 전에 왼쪽 링크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꿈을 이루어 나가는 자세, 성공이란 무엇일까? 

때로는, 꿈을 꾸기에 삶이 녹록치가 않다. 정말로 현실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때로는 하고 싶은 것들을 그만두고 무거운 현실을 다루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갖는 것이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고 뜨거운 열정을 끌어낼 수 있는 가장 큰 힘을 준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한 쓰디쓴 역경이 찾아왔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주는 감동과 그것을 이룰 내일에의 기대감이 나를 쓰러지지 않게 지탱해 주었다. 여유로운 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때로는 인생의 무기력과 생의 포기로부터 나를 보호하고 이끌어주는 유일한 희망이 되기도 한다.

꿈을 추구한다는 게 사치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 성취에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목표와 꿈을 동일시하니까 그 달성의 성패 여부가 곧 인생의 한방 승부, 올-인-원 도박이 된다. 꿈은 방향이고, 모 아니면 도의 외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꿈에 매몰되지 않으려면 목표가 나를 떠밀게 하지 말고, 내 목소리가 계획과 목표 달성을 끌고 가게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과 여정이 말해주는 이야기(story)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목표를 세우기 전에 "왜" 나는 그것을 이루고 싶었나를 먼저 묻고 그것에 답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에 대한 대답을 찾고 나면, 그로 향하는 길이 꼭 하나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좋고, 단기간에 대박이 나지 않아도 좋고, 멋지게 넘어져 실패해도 좋다. 바로 지금부터 고민하고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며 조금씩 나의 꿈을 진화시키자. 목표 달성의 실패는 인생의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진보에의 필수 과정이다.

꿈이 비전을 향한 어떤 여정 자체라면, 실패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공에 대해서도 다시 정의해야 한다. 물질적인 소유물의 축적이나 권력이나 직위의 달성이 아닌, 자신의 신념의 성취로부터 오는 즐거움과 행복감이 바로 우리의 성공의 척도다. 농구 명예의 전당에 최초로 선수이자 감독 모두로 올랐으며 ESPN에서 모든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꼽는 고 John Wooden은 다음과 같이 성공을 재정의했다.

[전략] 저는 미스터 웹스터경이 (성공에 대해) 정의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소유물의 축적이나 권력이나 직위의 달성이나, 또는 비슷한 종류의 것. 아마도 가치 있는 성취들, 하지만 제 의견으로는 성공이 꼭 그렇게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스스로 뭔가를 찾아내고 싶어했죠...

글쎄, 그게 어디엔가, 제가 생각하기에 제 마음 속에 숨겨진 채 있다가 몇 년 이후에 튀어 나왔어요. 절대로 남보자 더 잘되려고 하지 말아라,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서 배워라. 너의 최고가 되는 것을 절대 멈추지 말아라 - 그것은 너의 통제하에 있으니 - 만약 네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너무 몰입하고 연관되고 걱정하면, 그것이 네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에도 역으로 작용할 것이다... 

네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아는 것에서 얻어지는 자기만족 그리고 마음의 평화죠. 그게 사실이라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할 수 있는 최상으로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리고 여러분에게 존재하는 상황을 개선하려고 시도한다면, 제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성공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상대방보다 득점을 많이 하고도 질 수 있고, 적게 득점한 게임에서 이길 수도 있습니다...  [후략]


이러한 성공에 대한 새로운 정의는 나에게 진정성(authenticity)을 가져다 주었다. 자신과 남을 비교 평가하려 들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에 스스로 최선을 다하는 것. 내 주변에 있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고 내 파트너와 배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것. 내가 남들보다 똑똑하지 못하고 가진 것이 적다고 해서 주눅들지 않고, 남들 앞에서 있는 척, 아는 척하지 않고 진솔해지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2년전의 나에 비해 나의 하루하루는 많이 달라졌다.


마지막으로, 비전이라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우리는 어떤 꿈을 꾸는가?

작년 가을 이집트에 갔을 때의 일이다. 난생 처음 피라미드를 눈앞에 두고 나는 언덕에 걸터앉아 스케치를 하고 있었다. 꽤 집중해서 30분쯤 그리느라 별로 주변을 살피지 않았지만 무언가 점점 시끌시끌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기를 끝내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근방에서 낙타를 끌고 기념품이나 사진 촬영을 팔던 어린 꼬마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내 그림을 보고 있었다. 어디서 왔는지도 모를 이방인이 자신들의 사는 곳을 그리는게 그렇게 기쁘고 신기했나보다. 너도나도 나와 사진을 찍고 싶어 난리였다. 원래는 그렇게 사진을 찍고는 돈을 요구하는데 아이들은 그저 신나서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했다. 나는 반 시간 동안이었지만 그 가난한 아이들의 자랑거리었다. 난 내가 쓰던 그림 도구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고, 아이들은 뛸 듯이 기뻐했다. 고작 몇 천원이면 사는 4B연필과 지우개 조각이었다. 그 아이들 역시 내 인생의 가장 큰 기억이 되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다른 환경에 있었지만 잠깐이나마 환히 웃으며 서로 연결되었다. 

이곳 MBA에 와서 마음 깊이 존경하는 Visionary leader들, 특히 John H. Vogel Jr.교수의 E-Ship in Social Sector에서 만난 사회적 기업가들을 만나 다양한 영감(Inspiration) 얻을 수 있던 것은 내게 있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내가 그들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라서, 똑똑해서, 높은 지위에 있어서가 아니고, 그들이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과 그를 통해 그리고자 하는 미래가 내 마음 깊은 곳에서 강하게 공명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대학을 나오고, 최고의 회사를 이끌어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더라도 그게 그저 본인의 능력(Capability)의 입증에 불과한 사람이 있고, 이 세상에 작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건 어떤 종교적인 메세지가 아니다.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적인 활동을 하라고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모두 이미 알고 있다. 어렸을 때 간절히 원하던 장난감을 얻었을 때처럼, 으리으리한 집을 짓고, 좋은 차를 사고, 멋진 옷을 입고 뽐내고 다녀도 그 무대 속에 자신 뿐이라면 금새 공허해진다는 것을. 나 하나 편안하고 풍요롭게 잘 먹고 잘 사는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 세상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기쁨,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과 자연의 아름다움이 당신의 비전 안에 있길 바란다. 

꿈, 비전은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이다. 해리 포터의 작가 J.K.Rowling은 2008년 하버드 졸업식 연설에서 상상력은 다른 사람들의 기쁨, 고통, 슬픔을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공감할 수 있는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라고 말한 바 있다. (In its arguably most transformative and revelatory capacity, it is the power that enables us to empathize with humans whose experiences we have never shared.) 

꿈은 누리는 자만의 전유물도 아니고, 당신의 현재의 무기력함의 핑계도 아니며, 경쟁에서의 승리도 아니다. 나를 달리게 하는 가장 강한 힘이고, 내가 사는 이유다.

So given a Time Turner, I would tell my 21-year-old self that personal happiness lies in knowing that life is not a check-list of acquisition or achievement. Your qualifications, your CV, are not your life, though you will meet many people of my age and older who confuse the two. Life is difficult, and complicated, and beyond anyone’s total control, and the humility to know that will enable you to survive its vicissitudes.

만약 나에게 과거로 돌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21살의 나에게 말해주겠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인생이 무언가를 하나하나 획득하고 성취해 나가는 체크리스트가 아님을 깨닫는 것에 있다고 말입니다. 당신의 자격증, 당신의 이력서가 당신의 인생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은 앞으로 그 둘을 구분하지 못한채 사는 내 나이 또래나 심지어 나보다 더 연륜이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겠지만요. 삶은 어렵고, 복잡하고,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의 밖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겸손함이 삶의 우여곡절에서 여러분을 살아남게 해줄 겁니다.


당신은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당신의 인생, 어떤 꿈을 꾸고 있습니까? Part I 에 이어지는 글이다. Part I은 왼쪽 링크를 참조해주기 바란다.


Posted by neinume
MBA (Tuck & IESE)2013.02.16 11:03

아직 한 학기가 더 남긴 했지만 MBA가 막바지에 이르니 주변으로부터 앞으로의 신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마음의 결정은 내렸는지, 졸업하면 어디로 가서 무슨 일을 하게 되는지, 미국에 남는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오는지, MBA과정이 결국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와 같은 이야기들. 이러한 모든 질문들에 답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겠지만, 나는 이곳 미국에서의 MBA를 통해 무엇을 얻었냐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가장 중요한 하나를 꼽으련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몰랐던 세상을 살아가는 다른 방식을 보고 배웠다고.

일전에도 여러 차례 꿈이니, 마음의 목소리니, 하고 싶은 일을 찾느니 라는 소리를 했었는데 그게 대체 구체적으로 무얼까? 나의 2년은 꿈을 다루는 것에 대한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한 화제에 대해 조금씩 알아 나가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와 어떤 태도로 삶을 바라봐야지는지와 같은 문제에 대해 실로 많은 세상의 리더들이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 사실은 마음 한켠에서 막연히 느끼고 있던 것들이지만, 또 막상 누가 물으면 쉽게 설득력있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그러한 생각들과 깨달음과 신념들을 이제는 조금 구체적으로 연결하고 정리해볼까 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글이 길어져서, 한 호흡 쉬어가기 위해 파트를 나누었다. 중간 중간 동영상을 걸 텐데, 시간을 들여 꼭 한 번 볼 만한 것들이다.

Part II. 꿈을 이루어 나가는 자세,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꿈을 갖는다는 것은 무얼까?

어른이 아이들에게 꿈을 묻는다. 대답은 각양각색이다. 선생님이요, 과학자요, 대통령이요. 얼마 전에 친구가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넌 꿈이 뭐니. 돌아가서 조선 회사 사장하는거? 꿈이 뭐냐라는 질문은 앞으로 뭘 하고 싶냐라고 묻는 것인데, 이렇듯 우리는 종종 직종이나 직함과 같은 타이틀로 대답을 하곤 한다. 

나는 요즘 꿈을 갖는다는 것은 "뭐뭐가 되겠다"와 같이 어떤 직업을 원한다는 선택도 아니고, 경력 개발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것들에게는 차라리 계획과 목표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그 목표의 달성을 통해 성취하고자 하는 상황, 세상, 변화를 그리는 비전이 저변에 있어야 하고, 그게 먼저 정의되어야 한다.  나의 인생은 어떤 골인 지점이 있어서, 그것을 넘는 순간에 끝나는 일회성 게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과학자가 되겠어요"와 같은 목표스러운 꿈을 더 자주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게 더 명료하기 때문일 것이다. 목표를 세우고 나면, 무엇을(what) 어떻게(how)해야 할 지 나름대로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진짜 중요한 것은 과학자가 되는 순간이 아니라, 왜 내가 과학자가 되고 싶은지이다.

비전은 왜(why)에 대한 대답이다. 왜 내가 이러한 목표들을 추구하는지, 더 나아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하루 살아가는지의 이유에 대한 근원적인 대답이다. 그것은 곧 신념이자 자기 정체성과 연결된다. Simon Sinek은 아래의 강연에서 리더들이 어떻게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모티베이션을 창조해 내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왜"라는 것은 즉: 무엇이 당신의 목적인지? 당신의 이유가 무엇인지, 당신의 신념이 무엇인지를 의미합니다. 당신이 속한 조직은 왜 존재합니까? 당신은 왜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납니까? 왜 누군가 신경을 써야 합니까?결과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고, 소통하는 방식은 외부에서 안쪽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가장 명백한 것부터 시작해 가장 까다로운 것으로 향해 가죠. 하지만 영감을 주는 리더들 그리고 단체들은, 그들의 크기와 산업에 상관없이 모두 생각하고, 행동하며 소통합니다. 내부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중략]

목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 아닙니다. 목표는 당신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파는 것이지요. 목표는.. 단지 직업이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것이지요. 알다시피, 저는 항상 이것들을 말합니다. 만약 단지 그 일을 할 수 있어서 고용했다면, 그들은 돈을 위해 일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당신이 믿는 것을 믿는 사람들을 고용한다면,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열과 성의와 땀으로 헌신하며 일할 것입니다.... [후략]


그렇다면 이제 한 번 물어보자. 왜 우리는 무언가가 되고 싶을까? 왜 나만의 사업을 열고 싶고, 지독하게 준비하고 미국에까지 MBA를 와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어떻게 경력 개발을 할지 궁리를 할까?

내가 살던 사회에서, 그리고 과거의 나를 포함한 이곳 MBA에 와서 조차도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대다수의 꿈들이 암시하고 있는 비전은 비슷해 보였다. 오늘보다 더 풍요로운 앞으로의 삶을 영위하는 것 - 돈을 많이 버는 것. 유명해지는 것.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누리는 것들 말이다.

그런데 Simon이 주장하듯 이러한 것들은 실상 이유가 아니라 결과물(output)다. 어떤 궤도 이상에 이른 사람들이 누리는 타이틀을 부러워 함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돈과 명예가 최종 목적이 아닌 사람도 있다. 그런데, 자신 만의 꿈에 대한 강한 열망을 지닌 사람들조차도 종종 나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먼저 부와 지위를 단기적으로 빨리 달성해서 여건을 형성한 후에 나만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The Monk and The Riddle의 저자인 Randy Komisar가 이를 미뤄 둔 인생 계획 "Deferred Life Plan"이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 믿는 것들은 일단 뒤로 미뤄 두고, 열심히 일하고 돈 벌고 성공해서 조기 은퇴 후에 그러한 것들을 즐기고자 하는 대다수 사람들의 인생 계획에 대해 Randy는 책 전반에 걸쳐 경고한다. 성공적인 벤처 캐피탈리스트인 그는 이른바 창업을 통해 대박을 내서 부자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사업을 시작하려는 이들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졸업 연설에서도 말하지 않았나. 내일 죽더라도 오늘 하고 있는 일을 할 것인지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물어보라고. 은퇴 후 넉넉한 취미 활동 자금을 모으는게 오늘의 내가 하고 있는 일이라면 아마도, 내일 내가 죽는다면 절대 하지 않을 거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우리가 흔히 꿈꾸는 결과/물질 지향적 삶은 동기 부여가 없고 일관되지도(consistent) 또 지속적(sustainable)이지도 못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지금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는 일이나, 퇴직 후에 하고 싶은 일이나 둘 다 성취하기 어렵다. 그 두 개의 분야에서, 왜 자신이 그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대기업에서의 내 직장 생활이 그랬고, 아마도 나와 비슷한 처지의 많은 사람들의 직장 생활이 그랬을거다. 지난(至難)하다. 뭐가 되든 일단 돈을 잘 벌고, 또 어차피 내가 (나중에) 진정 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보니 세상에 선택지가 너무 많다. 좀 하다가 잘 안 된다 싶으면 엉덩이가 들썩인다. 배를 갈아 타고서도 내가 제대로 경력 개발을 하고 있는건지, 가라앉는 배를 탄 건 아닌지 늘 불안하고 주변을 기웃거린다. 서점에 가면 이런 게임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기술을 가르치는 서적이 넘쳐난다. 경력을 개발하고 제태크를 하는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우리는 왜 그런 것들이 내게 필요한지 묻지 않은 채, 실은 방향 없이 주변의 경쟁자들을 통해 나를 파악하며 하염 없이 노를 젓지 않았나. 왜?라고 누가 물으면 "잘 먹고 잘 살려고"라고 답하면 됐지만 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대답이다. 못 먹고 못 살려고 삶을 영위하는 사람이 어디 있나. 우리는 나침반 없이 항해한 셈이다. 

경력 개발과 인생에 대한 단상에서도 썼었지만, 꿈의 수립과 실행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다. 실행을 통해 배우고, 그게 피드백이 되어 내가 꿈꾸는 미래의 모습도 진화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것이 현실은 외면하고 내가 하고 싶은 분야로 당장 뛰어들어 위험을 감수하라는 무책임한 선동이 아니다. 이곳 Tuck에서 한 교수님이 말씀해 주셨듯, "우리들의 꿈은 어디 벽에 걸려 있는게 아니다. Your dream is not hung on the wall." 심오한 궁리와 실험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의 조건,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어떻게 하면 연결할 수 있을지 바로 "지금 당장부터" 고민하라는 의미다. 그리고 그 과정은 일시적이 아니고, 일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과정이다. 중간 중간의 깨달음과 성취에도 즐거움이 있지만, 사실은 비전을 향해 진화해 나가는 여정 자체가 바로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



글이 길어져서, 한 호흡 쉬어가기 위해 파트를 나누었다. 중간 중간 동영상을 걸 텐데, 시간을 들여 꼭 한 번 볼 만한 것들이다.

Part II. 꿈을 이루어 나가는 자세, 성공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떤 꿈을 꾸어야 할까?





Posted by neinume
MBA (Tuck & IESE)2012.11.29 00:18


싸이의 최근 행보, 옥스포드 강연과 그의 힐링 캠프 출연 방송을 보면서 갑자기 몇 년 전 읽었던 강인선 저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 라는 책이 생각이 났다.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책에 이르기를, 인생은 점잇기 그림과도 같다고 했다.

점을 찍을 때는 서로 무관해 보이고 엉망진창으로 보이지만, 언젠가 시간이 지나 그것들을 돌이켜보며, 그 무관해 보이는 점들을 하나씩 이어나가면 자신의 인생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아, 늘 헤매고 다닌 줄만 알았는데 완전 엉망진창은 아니었어. 내가 무심코 한 일들이 다 쓸모가 있구나.' 하는 안도감. 또 더 멀리 오래 가서 뒤돌아봤을 때 또 새로운 의미가 생기는 그 행복감.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도, 블랙 스완은 언제나 그것이 발현하고 난 후 회상을 통해서만 설명이 가능하다고 했지 않았나.


새삼스레 참으로 그렇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이 나중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게 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동시에, 그것들이 내 인생의 어느 시점에선가 내가 그리게 될 '큰 그림'의 일부가 되리라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그런 구도로 보니 그림 그리는 과정과 유사하다.

내가 무언가를 그려야겠다고 생각하며 노트와 펜을 꺼내들 때는 무언가 멋진 이미지나 영감, 이른바 "삘"이 머릿 속에 떠오를 때다. 

그런데 재미 있는 것은, 막상 그리기 시작하면, 그 느낌이 사실 얼마나 애매하고 불완전한 영상이었는지에 한 번 놀라고, 그림이 다 그려지고 나면 그 완성물이 시작할 때 머릿 속의 이미지와 사뭇 다름에 놀란다. 아니, 애시당초 초반의 이미지와 결과물은 같은 뿌리를 둘 지언정 사실상 거의 다른 존재다. 그 초반의 영감(Inspiration)은 나를 움직이게 했던 촉매이고, 그 촉매 위에 그림을 형상화시키는 것은 그리는 사람의 재능, 경험, 기술과 같은 Capability다. 그 둘은 상호 보완적이고 서로 독립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초반의 영감이 그 자체로 이미 완전하고, 그림 기교와 실력이 그것을 얼마나 가깝게 재현하느냐의 과정이 아닌 거다. 어딘가 불완전한, 그러나 강렬한 Inspiration이 있고, 자신의 Capability가 그것을 보완하며 둘이 상호 작용하며 그림이 완성된다. 마치 싸이가 연설에서 자신의 지난 커리어를 회고하듯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야 여기저기 찍어두었던 점들이 어떤 역할과 작용을 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제서야 회상 속에서 자신만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이른바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케이스를 통해서 성공한 기업들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배우지만, 그 분석의 과정은 늘 회상적이다. 그 결과물을 그대로 카피해서는 결코 기업이 탄생하여 살아 숨쉬게 할 수 없다. 어떤 기업의 사업 모델도 절대로 같을 수 없다. 나의 경력을 만드는, 인생의 큰 그림을 만드는 메커니즘도 이와 유사하지 않을까.


그럼 자연스레 떠오르는 질문 :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나?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려면 어디에 어떤 점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이 질문의 답에 대한 단서가 될 만한 조언을 최근에 수업 중에 내가 존경하는 교수님 Professor Mª Julia Prats으로부터 들었다.

Good career is not about going up. It's about having/developing different capabilities. 

좋은 경력은 얼마나 상향하는가 (더 높은 직급, 더 많은 연봉, 더 유명한 회사 입사, 내가 다니는 회사 사장되기? 등)에 대한 게 아냐. 좋은 커리어는 어떤 자기 계발을 하느냐에 대한 거야.

딱히 경력 개발에 대한 수업도 아니었고 잠깐 지나가는 말이었는데 나는 어떤 깨달음 때문에 충격에 휩싸였었다. 나는 또 어느새, 어떻게 상향하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진짜 핵심은 그게 아니다.


이제 아까의 질문에 대답해 보자: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나? : 그 그림이 무엇이 될지 지금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아직 다소 막연하지만, 무언가 강렬한 동기부여와 끌림과 방향과 이루고 싶은 불완전한 이미지가 있다. 계획과 실행보다 더 선행하는, 뭔가 좀더 근본적인 힘 말이다. 사장이 되겠다, 진급 더 하겠다, 떼돈 벌겠다, 유명해지겠다와 같은 "going up" 명제들은 이러한 동기 부여의 원천도 목표도 될 수 없다. 그건 이미 남의 결과물에서 나온, 점잇기가 끝난 그림에서 나온 부산물에 대한 무의미한 동경이다. 어제 Emerging Economics라는 수업에서 경제적 부와 행복지수에 대한 연구 결과에서도 인지되는 내용이었지만, 사람은 환경에 대한 놀라운 적응력을 가졌기 때문에, 부와 안락함 같은 물질적인 지표의 달성은 당신을 영원히 채워주지 못한다. 그 과정은 자체로 지난하고 재미가 없다.

이 부분에 대한 약간의 부연 설명: 구체적인 목표와 계획이 중요하지 않고, 그저 마음가는 대로 하라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 선행하는, 활활 타오르는 영감을 찾으라는 이야기다. 그 위에 Goal이 세워지고, 전략과 실행이 이루어지지만 그 과정이 어떤 결실로 나타날지는 차후에 알게 되니 자신의 선택의 폭을 제한하지 말고, 그림을 그려 나가는 과정을 즐기자는 것. 자신만의 열정의 소스를 찾는 것에 관련해서는 MBA1년, 등불을 걸다 도 참고.

그리고 그 그림을 그리려면 어디에 어떤 점을 어떻게 찍어야 하나? : 

  • 나의 Inspiration이 말하는 대로 - 상향하겠다는 직설적인 명제에서 해방되면 나의 커리어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게임이 된다. 최근 들어 나릉 강하게 잡아 끄는 무언가들이 있다. 
  • 때로는 정말 무작위로 - 내가 대학교 때 들었던 인류학 개론, 영화와 역사, 미학 개론과 같은 내가 현재 있는 위치와 너무나도 다른 차원에 있는 수업들이 지금 내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MBA에 오게 된 것,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는 것, 모든 것들이 내 인생에 내가 계획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거대한 변화와 임팩트를 초래하고 있다. 좀더 자유로워지고 마음의 소리를 듣자. 저 먼 곳에 찍어둔 점이 나중에 나의 인생 그림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 최선을 다해 - Inspiration을 활활 불태우자. 전문가 정신을 가지고 내가 찍는 점 하나 하나를 통해 나를 연마하자. 그들 중 어느 하나도 무의미하고 허툰 것은 없다. 그 점들이 나의 영감을 구체화하고 완성시키며 어느 순간 그것들을 연결하는 순간(connecting the dots)이 올 거다. 돈 보다 시간이 더 중요한 자원이다.


써놓고 보니 내가 오랜 시간 동안 여기저기서 주워 들었던 것들이 비로소 연결되며 뭔가 얻은 기분이다. 글이 너무 추상적이고 난해하게 쓰여진 이유는 아직 내공이 한없이 부족한 이유다.  (내일 아침 첫 수업에 기말 시험도 있는데 새벽 세 시까지 난 뭐한거지.) 


6년 전, 내가 경력적인 문제로 너무나도 힘들어 하고 있었을 때, 그 고민과 힘듦의 정점에 이르러 있었던 나를 왈칵 눈물 쏟게 만들었던 책 머릿말에 있던 문구로 마치겠다. 왠지 모르게 나는 울면서 서점 바로 그 자리에서 책을 집어 들어 값을 지불하고, 그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걸 내내 읽고, 일주일 후 나는 내 첫 회사에 사직서를 냈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그 때를 계기로 내 인생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아직도 생생하게 당시의 그 문구 한 구절 구절을 기억한다.

"잘되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보다는 차라리 실패해도 좋다는 각오로 무장해라. 발 편하고 튼튼한 구두를 신은 것처럼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순간에도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라는 낙관을 버리지는 마라."



IESE에서 GROWTH라는 신생 기업들의 성장 모델을 분석하는 전략 수업을 들었다. 대부분이 교수님이 직접 쓴 케이스를 다루고, 분석과 의사 결정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한 후에 직접 그 케이스에 나오는 기업의 CEO를 수업에 초빙해서 그 당시의 실화를 듣는다. 너무나도 많이 자극 받고 배웠던 수업.


Mª Julia Prats 

Associate Professor of Entrepreneurship 


Doctor of Business Administration, Harvard University

Master in Business Administration, IESE, University of Navarra

Degree in Industrial Engineering, Universitat Politécnica de Catalunya


Posted by neinume
MBA (Tuck & IESE)2012.08.29 02:44

이제 8월이 슬슬 마감되어 간다.
MBA 2년 중 그 1절반인 1년이 마감되고 새로운 2학년이 시작되려는 것이다.

그 이전에 말할 수 없이 바쁘고 다이나믹했던 Tuck에서의 1년 학기, 그리고 몇 명 안되지만 한국 재학생 회장을 하며 있었던 일련의 경험들, 그리고 끓어오르는 사막의 미국 풍력발전 건설현장과 이제는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가 된 헬싱키의  Maritime IT회사에서 여름 인턴을 한 것 등이 떠오른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수 년 전 MBA를 가겠다는 무모하고도 철이 없었던 결심을 한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토록 고대하던 MBA의 과정도 절반을 훌쩍 넘겨 버리고 말았다. 나는 무엇을 얻었고 뭐가 변했나? 

MBA에는 더 많은 일이 있지만, 나에게 깨달음을 준 중요한 사건이었던 인턴십을 위주로 이야기 해 보겠다.


여긴 어디? 난 누구?


오비맥주의 이호림 사장님이 내가 학교에 가기 전에 Tuck에서의 생활을 묘사해 준 일이 생각난다.
"길거리에 보면 소방 호스 있지? 그걸 뽑아다 덕훈씨 입에 꽂아요. 그리고 물을 최대로 틀어. 그럼 입에 들어오는 거, 대부분은 못 삼키고 촤악 하며 사방으로 튀고 턱 밑으로 줄줄 새는 거 뭐 막 엉망이죠? 그 와중에 자기가 필요한 거 골라내 가며 삼키고 소화해 내는 거에요."

돌이켜보면 미국 MBAer 중에서는 나름 특이한 경력을 지녔던 것 같다. Naval Architecture라는 흔치 않은 전공에 7년 간 회사에서 기술 영업 (배를 디자인하고 Buyer와 기술 계약 협상을 하는 곳) 을 해 왔으니 말이다. 특히나 Naval Architecture는 공학 중에서도 컴퓨터, 유체, 기계, 재료, 토목 등과는 호환성이 낮고 포션도 작은 영역이고, 영업, 전략, 인사, 회계, 재무와 같은 MBAer들이 보통 이력 상 한 번 쯤은 직/간접적으로 경험했을 만한 분야와도 거리가 멀다. 그야말로 "배"만을 위한 영역인 것이다. 어디 주변이나 회사에나 MBA나왔다는 사람도 없었고 나와 유사한 경력을 가져서 내가 롤 모델로 삼을 만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내가 애시당초 왜 MBA를 생각하게 되었나? 

내가 하던 일에 재미도 느끼고 있었고, 또한 막연하게나마 Maritime이라는 영역에서 내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비전도 있었다. 즉 현재가 싫고 답답하여 무언가 탈출구를 찾다 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과하고, 내가 세운 비전을 실천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좀 거창하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 켠에서 무언가 이곳에서 벗어나 다른 곳을 탐험하고 싶은 욕구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어디 쯤에 있는 건지, 또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있는 비교표를 얻고 싶달까.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이 세계에 입문하고 나니 과연, 발을 들이민 바로 그 순간부터 "비즈니스"라는 키워드로 커버되는 모든 영역이 그 소방 호스에서 나오는 물마냥 힘차게 나에게 쏟아져 퍼부어졌다. 그러한 모든 것들이 생경했고 나는 무척이나 촌뜨기였다. 그래서 더욱 정신을 못 차렸고, 새로운 세계에 빠져들어 이리 저리 기웃거렸던 것 같다.

좋게 말하면 탐험, 나쁘게 말하면 하릴 없는 방황의 시작이었다. 당시에 나와 직접적으로 연관지을 수 있는 분야를 찾을 수도 없었지만, 뭣보다도 퀴퀴한 조선업종에 비해 모든 게 다 섹시해 보였다. 금새 기존의 계획은 잊은 채 수업, 프로젝트, 그리고 여름 인턴십에 이르기까지 무언가 삐까번쩍한 것을 해보자는 욕심에 여기저기 엄청나게 집적거리고 다녔다.

열심히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사력을 다해 뛴 것 같은데, 1학년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여름 인턴 리크루팅에서 여기저기 멋드러지게 미끄러졌다. 5월이 마감되어 가는데 내게 남은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와 바닥을 치는 자신감 뿐이었다. 처참하고 한심했다. 다들 여름 인턴십 채비로 바쁜데 나는 이제 와서 무얼 해야 하나. 나는 학교 이름에 먹칠을 하는 무능한 낙오자 같았다. 조선이라는 인기도 없는 딱지가 붙은 나를 대체 뭘 보고 이 학교에서 뽑아준걸까.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는데.


바람을 피우다.


그러다 방학을 한 달 남긴 5월이 다 된 시점에 기회가 생겼다. 솔직히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대도시 스카이 라운지를 낀 오피스도 아니고,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미국 중부의 풍력 건설 단지 현장에서 project management를 하는 일이란다. 워낙 촌동네라 차를 두 번, 비행기도 한 번 갈아타야 갈 수 있는 오클라호마 주의 가이몬이라는 인구 10만 남짓의 도시.

도착해 보니 내가 일할 사무실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낡은 창고 하나를 이제 막 임대를 하여 여기에 Inventory 창고를 차리고, 관리 직원을 뽑고, 파티션을 짜서 공간을 나누고, 필요한 가구를 사고, 전화/인터넷 등 Utility계약을 해야 한단다. 1시간 거리에 있는 현장에서 공사는 한참 진행 중이다. 대규모 풍력 발전기 수십여기를 설치하는 그야말로 회사의 사활을 건 공사에, Engineering 회사는 독일, 시공사는 미국, 관리사는 한국이라 별의별 사람들이 현장 사무실에 모여 있다. 공사 마감일은 턱없이 부족해 보이고, 바람이 많은 지역이라 툭하면 폭풍우가 와서 공사를 중단시킨다. 

이른바 A부터 Z까지 정말 모든 것을 다했다. 노가다판 마냥 나무 구해다가 톱질에 못질해서 재고 창고용 테이블을 만들고 사무실에 필요한 사무용품을 사왔다. 주말에는 사무실에 나와 계약서 리뷰를 하고, Change Order를 체크해서 장부 계산하고, 시도 때도 없이 Wind Turbine에 문제가 생기면 엔지니어와 차를 타고 현장에 갔다.

현장은 뜨거웠다. 늘 바람이 매섭게 몰아치는데, 온풍기를 얼굴 바로 앞에 두고 쐬는 것 같았다. 섭씨 50도를 우습게 넘기는 온도에 무거운 안전 장구를 걸치고 80m짜리 tower를 오르며 돌아다녔다. 탈수로 쓰러지지 않기 위해서 물을 엄청나게 마셔야 했다. 그러다 갑자기 Storm이 오면 콩알만한 우박이 쏟아지곤 했다. 독거미와 방울뱀까지 작업자들을 괴롭혔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수업에서 다루던 공식이나, 비즈니스 케이스에서 논하던 전략들은 다 어디가고 난 여기서 공구상자를 메고 타워를 오르고 있는가? 동창들은 뉴욕 월스트리트나 실리콘밸리에서 만인이 동경하는 세련된 생활을 즐기며 그간 MBA에서 배운 것들을 활용하고 있을 터인데 난 여기서 뭐하고 있나?

오기와 악을 에너지 삼아 일했다. 사실 이곳의 모두가 그랬다. 그곳은 회사의 사활을 건 한판 승부처였고, 작업자들 모두 어떤 절박함 속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의 홈그라운드로.


두 번째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첫 번째 인턴십이 끝나갈 무렵, 나의 처갓집, Maritime industry의 한 IT회사에 메일을 한 통 넣었다.

사실 기대감은 전혀 없었다. 그간 내가 조사한 바로는 해양 분야에서 딱히 미국 MBA를 필요로 한다는 느낌도 없었고, 미국 회사처럼 MBA를 위한 정형화된 인턴십 프로그램을 가진 회사도 없었던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해운이나 조선 업계에서도 Energy efficiency는 매우 뜨거운 이슈이고 여러 가지 기술이 논의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information technology가 앞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을 지녔다는 사실이 나로써는 평소부터 흥미로웠다. 그런 나의 관심사에 대해 좀더 같이 고민해보고 싶다고 메일을 썼다. MBA 인턴십이 없는 회사이니 방학 때 시간이 남으면 멀리서 원격으로나마 이 문제를 같이 고민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이 회사의 Co-founder이자 Technology팀의 VP 가 직접 관심을 보였다. 이 문제에 관해 본사에서 같이 작업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갑자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얼마나 있을 수 있고 체류하기 위해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몇 차례 협의한 후에 바로 핀란드의 헬싱키로 날아왔다. 


Maritime Industry, 다시 나의 홈그라운드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Shipping 분야, Ship Design technology, Energy efficiency에 대한 여러 리소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이쪽에도 방대한 세계가 있었고 대단한 역량을 가진 고수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퇴근하고 해안 도시인 헬싱키를 돌아다니면 어느 곳을 가도 크고 작은 선박과 요트가 떠 다녔다. MBA를 떠나기 전에 내가 디자인한 배가 거대한 건조물로 완공되는 모습을 볼 때의 감동이 다시 찾아왔다. 많은 것을 잊으려 애쓰고, 또 잊고 있었던 느낌이었다.





So what?


이야기를 좀 정리해보자. 그럴싸하게 썼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조선 백그라운드 탈출을 시도하다가 잘 안되니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뭐 그런 이야기 아닌가? 맞다. 전혀 자랑하려고 쓴 게 아니다. 별 대단할 것도 없는 나의 과거를 굳이 시간 들여 여기에 쓰는 이유는, 이 글을 보는 보는 분들이 MBA를 통해 좀더 본질적인 것들에 집중하고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모든 것의 본질이 무엇이었던가?


회상해 보니 나는 다른 분야를 서성거리고 엿보았을 뿐이지 그에 대한 마땅한 비전도 그 분야에서 진심으로 느껴지는 재미에서 우러나오는 열정도 없었다. 탐험해 보겠다는 전제는 좋았는데, 그냥 현지에서 아무거나 걸려라 라는 식이었던 것 같다. 몇몇 분야의 회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회사가 자기 분야에의 식견과 애착을 본다. 그 분야에서의 경력에 의해 우러나오는 통찰력, 그게 없으면 오랜 시간 동안의 관심이나 뜨거운 열정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없이 인터뷰 연습이나 레주메 쓰기 같은 형식에만 집중했으니 좋은 결과가 없었던 것 같다. 막상 평소에 정말 흥미롭다고 생각했던 주제, 그리고 그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가 있으니 이메일 몇 통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것만으로 없던 MBA인턴십이 뚝딱 만들어진다. 물론 인터뷰, 레주메, 커버 레터 같은 것들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효과적으로 selling하는 정말 중요한 요소들이고, MBA 세계에서는 하나의 art라는 생각까지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들 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아이디어, 자신의 인싸이트가 있어야 서로가 시너지 효과가 나고 형식에만 집중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재미가 없다.


무엇에 집중해야 하나?


그러니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도 답이 보인다. "한국 탈출", "미국 대도시 입성", "억대 연봉", "포춘 XX대 기업 취업" 이런 이른바 "남들이 보기에 엣지 있어 보이는" 목표보다 더 중요한 것은, MBA와 방대한 네트워크가 주는 리소스를 이용해서 짜릿한 재미와 열정을 느끼는 자신 만의 비전과 목표를 발굴하고 다듬어 내는 것이다. 근본적인 열망이 없는데 뭔가 있나 싶어 기웃거리거니 결과가 안 좋고, 내 길이 아니었던 것뿐인데 스스로를 잘못된 잣대로 남들과 비교하고 평가하니 자신이 비참하고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어느 나라 어느 도시에서 사네, 연봉과 Life style이 어떻네가 정말 아무 관심 없어질 정도로 엄청난 재미와 벅찬 기대감,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는 자신만의 밑그림을 그려냈다면 비록 그 겉모습이 그다지 화려하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람이 가장 MBA를 잘 활용했다라고 말하겠다. 다시 잘 살펴 보면, MBA에는 그런 자원과 기회가 산재해 있다. 


마음을 씻어내고 나에게 맞는 옷을 입다.


이제 마무리를 지어 보자.

풍력 발전 단지에서의 한 달은 힘들었다. 마치 군대에 다시 들어온 것처럼 환경도 열악했고 주변 사람들은 거친 현장 엔지니어들이었다.

그런데, 땀을 뻘뻘 흘리며 타워 꼭대기에 기어 올라가 그 꼭대기에 올라가 줄 하나에 매달려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 세상을 내려다보고 평야 끝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쐴 때면 나는 정말 미국 어느 지역보다 내가 멋진 곳에 있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엔지니어들과도 같이 땀흘리고 농담 주고 받으며 친해지며 여러 모로 정말 많이 보고 배웠다.

해가 지는 저녁 즈음, 헬싱키의 바닷가 저 멀리 불을 켜고 들어오는 거대한 선박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옛날 교역물을 싣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던 뱃 사람들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기술이 달라졌을 뿐이지, 같은 배이고 같은 바다 냄새가 난다. 우리가 쓰는 많은 용어와 엔지니어링 기법 역시 오랜 옛날 범선으로 교역을 하던 시절부터의 흔적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선박이라는 거 퀴퀴하고 무식한게 아니라, 이제 와서 멀리 돌아 와서 다시 보니 오랜 손때 묻은 골동품같이 멋스럽다. 

이제 와서 보니 MBA오기 전, 해양에 인류의 미래가 있다는 나만의 거창한 초반의 포부에 밑그림을 그린 것도 같다. 오클라호마에 있으면서 해상 풍력 발전의 가능성과 현주소에 대해서 많은 전문적인 이야기를 들었고, 헬싱키에서는 선박 운용과 에너지 효율을 IT와 접목시키는 방법을 고민해 보았다. 1년 간 주류 mainstream가 아니라는 핸디캡을 달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기도 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호되고도 좋은 훈련이었고 그 훈련은 나에게 사고의 유연성을 주었다. 그리고 타 분야에 대한 근거 없는 동경심 같은 감정도 없앨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리 저리 방황하고 넘어져 엎어지는 사이에 뭔가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고, 이제는 많은 것들이 다르게 느껴진다. 내가 가지고, 느끼고 또 알던 것들은 다시는 이전과 같지 않다. 

써놓고 나니 참 당연하고 모르던 내용도 아닌데,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안 보이고 안 들렸다.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그제서야 그것들의 맥락이 보인다.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자꾸 남들하고 비교해서 자신을 평가하려는 습성이 자신의 시야를 가린다. 

이거 해본 사람은 알거다. 5월 말이 되도록 인턴십 하나 못 잡은게 얼마나 사람 피를 말리고 처참한 기분이 들게 하는지. 그런데 일이 어떻게 풀릴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에도 결국 일이 잘 될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말아라. MBA는 대부분들에게 큰 투자이다. 그러니 더더욱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 만의 고유한 스토리를 만들며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쫄거 하나도 없다.

1년 간 이곳 저곳에 내가 가는 길에 몇 개의 이정표가 될 만한 등불을 걸었다. 조금은 더 넓어진 시야로, 조금은 더 능숙하게 2학년을 꾸려보자. 

Posted by neinu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