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ily Life2013.01.14 00:07


어제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공연 센터에서 흥미로운 공연들을 많이 내놓아 아내와 함께 표를 사러 갔었다. 공연 가격은 꽤 싸서 한 장에 15$이다. 학교 인지도 때문인지 이 시골마을에도 제법 굵직한 아티스트들이 심심찮게 들르는 듯 하다. 팜플렛을 보니 다트머스 학생은 학생할인으로 5$에 티켓을 살 수 있다. 15$도 모자라 5$라니, 꽤나 쏠쏠하다.

작년이 생각났다. 같은 곳에서 표 살 때 학생증을 안 가져왔었는데, 점원이 그냥 시스템에 이름을 쳐 넣으니 내가 다니는 학과와 학생 번호가 나온다. 점원이 이게 너냐고 물은 후, 그렇다고 하자 쉽게 학생 할인가로 표를 내준다.

그래서 문득 드는 생각이, 급한 것도 아닌데 누구 학교 친구 이름을 대서 아내를 이 학교 학생이라고 속이고 아내 것도 싼 값에 살까 싶은거였다. 보려고 하는 공연이 여러 개라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가격이 꽤나 차이나고, 그렇게 샀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들었던 것도 같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한 이야기는 아닌 듯 싶었다. 그럴 리는 거의 없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하다 걸리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보니 생각보다 상황이 심각하다. 점원에게 경멸 섞인 눈초리로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라고 훈계를 들은 후 멋쩍게 자리를 나서며 끝날 수도 있겠지만... 아니, 그간 미국에서 지내온 감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라고 말해주고 있었다.

1년간 미국 사회에 있으면서 내가 한국 사회와 가장 차이난다고 느끼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미국의 무식하다 싶을 정도의, 우리가 종종 융통성이 없다고 표현하는, 철두철미한 준법정신이다. 이게 반드시 미국 사람들이 법을 완벽히 다 지킨다는 표현하고는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그보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미국의 준법정신이란, 이곳의 사람들이 불법을 대하는 잔인하고도 엄중한 태도와 사회적인 분위기를 말한다.

아주 사소한 법규라 할지라도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곧 그 사람의 신뢰도를 대변한다. 미국은 철저한 신용사회다. 저 혼자 리스크 지고 불법하는 거야 그렇다고 쳐도, 그것을 명백히 알았는데도 용인해주는 사람도 범법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신뢰를 잃는다. 한 번 신용을 잃으면 정말 회복하기 어렵고, 아주 불편하고 어려운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하듯이 "에이 아시면서~", "비슷한 처지에 왜 이러세요" 배시시한 미소에 찡긋하며 눈감아 주기를 청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은 상대방도 그 지역과 사회에서 신용을 잃는 리스크를 감수해 달라는 말과도 같다. 더구나 좀 친해졌다고 생각하는 미국사람에게 이런 청을 하지 마라. 모처럼 얻은 친구를 영영 잃을 것이다.

예전에 미국 살던 친구가 해줬던 말처럼,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믿어 주고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걸리면 정말 가차없다.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지키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지키고 사는게 제 1 순위로 보호된다. 정지 신호 앞에서 일일이 정지하고, 한적한 도로에서 다소 낮은 제한 속도를 지키며 달려도 성질 급한 뒷 운전자가 경적을 울리지 못한다. 법규 지키며 가는게 답답하게 느껴질 때는 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누군가 앞차에 대고 빵빵 울려대면 모두가 그를 부정적인 시선으로 본다. 남에게도 불법을 강요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 혼자 경찰한테 걸릴 리스크 지고 추월해 갈 일이다. 그거야 뭐 내가 어쩌겠는가. 그게 내가 본 미국 사회의 준법에 관한 사회적 압력이다.

여기에는 귀족이라는 특권층이 없는 상태로 시작된 미국의 법치주의 역사와 개인주의에 기반한 상업국가라는 특징이 원인으로 꼽힐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는 법규를 지키고 사는게 가장 우대받는 사회적 분위기와 사람들의 사고 방식이 미국을 지금까지 이르게 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법은 단정하게 명시되어 있고, 정서보다 명료하고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시스템과 기타 모든 것들이 좀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 일하는 것, 그리고 비즈니스를 하는 것은 어렵다. 때로는 지키라고 정해 놓은 것을 지키는 것이 어려울 때도 있다. 순진하거나 바보라고 조롱당하기도 하고, 너만 깨끗한척 하냐 얼마나 잘되나 보자 같이 저주를 받기도 한다. 성과에 대한 보상이 공정하고 일관되지 못하니 종종 동기부여의 불이 꺼진다. 아마 내가 오늘 15$을 곧이곧대로 내고 티켓을 샀으면 잘 했다고 칭찬해 줄 한국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 사람들 세계 누구 못지 않은 뜨거운 에너지를 지녔지만 왜 2% 부족한 채 선진 사회로의 문턱을 넘지 못할까. 우리가 마저 달성해내야 할 남은 효율성이 이곳은 아닐까.


나는 표를 그냥 제값주고 사기로 했다. 아, 점원이 올해부터는 학생증이 있으면 4개까지 학생 가격으로 살 수 있단다. 나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많긴 많았나보다. 결국 전부 5$에 샀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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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inu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