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A (Tuck & IESE)2012.12.22 02:02

Tuck에서의 MBA 1학년을 마치면서 이보다 더 다이내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2학년을 여는 첫 학기인 스페인에서의 지난 4개월은 또 한 번 마음 속에 큰 변화를 맞으며 여러 가지를 배운 기간이었다.

좀더 멀리 돌아보면 미국 중부의 사막 공사 현장에서 일하다가, 가정사에 한 차례 어려움을 겪은 후, 북유럽 핀란드에서 (아직도 내 블로그의 유입 키워드 1위는 핀란드다.) 일하며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곧장 지중해에 접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날아와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생각과 사는 모습을 보았다. 아마도 IESE였기에 들을 수 있었던,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 놓았던 몇 개의 수업들, 앞으로 내 인생 행로에 영향을 미칠 만한 멋진 사람들, 공부할 것 잔뜩 싸들고 아내와 함께 돌아다녔던 스페인 전역 곳곳과 남유럽의 풍경들, 그리고 이집트에서 살짝 엿보았지만 가슴 속에 묵직한 무언가를 남겼던 중동이라는 신세계로의 체험은 지난 반 년이 나에게 남긴 유산이다.


위에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그다지 큰 맥락 없이 자유롭게 이 유산들이 내 마음 속에 새겨준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진정한 글로벌 리더십을 추구하는 유럽 명문 비즈니스 스쿨 IESE

IESE에서의 MBA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미국에서 듣던 MBA와 근본적으로 달랐다.

처음 IESE에 와서 수업을 들을 때는 차이점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케이스를 바탕으로 한 토론식 수업, 그룹 과제와 다양한 소셜 네트워킹 활동, 그리고 리크루팅을 포함한 기업과의 교류 활동 등으로 구성되는 하루 일과도 그렇고 수업에서 다루어지는 비즈니스 관련 용어나 툴도 딱히 다르지 않았다. Tuck에 비교하자면야 해노버라는 한적한 대학 도시와 스페인 핵심 관광 허브인 바르셀로나라는 환경의 차이가 있겠지만, 그게 나한테 중요한 이슈는 아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 수록, 또 4개월 간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을 마치고 회상해보니 내가 미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정말 극명하고 다른 차원의 차이가 드러났다. 바로 IESE의 주요 모토의 하나이기도 한 진정한 국제적 다양성이 만들어내는 환경이 그것이다.

수치로 살펴 봐도 졸업생들이 대표하는 국적의 수가 110여개로 Tuck의 40개나 여타 미국 MBA학교의 40-60개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국적의 수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역시 어느 한 국가/문화도 교내에서 주류를 이루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금 회상해보면, 나의 Tuck에서의 1년은 누가 뭐래도 미국을 배우는 자리였다. 나는 미국 애들이 어떻게 노는지에 익숙치 않았고, 그네들이 이야기하는 드라마와 스포츠를 몰랐고, 그들이 빠르게 굴려 발음하는 Native English에 서툴렀고, 그들의 사고방식을 알지 못했다. 이러한 미국에 대한 무지는 곧 내 학교 생활에 있어 큰 핸디캡이었고, 그것은 나에게 도전이자 스트레스였다. 이곳은 누가 뭐래도 미국 학교고, International student라는 표현 자체가 대변하듯 나는 주류에 편입하려는 소수였다. 그렇기에 더욱 IESE가 제공하는 국적과 문화의 균형과 다양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명료하고도 다른 경험으로 느껴졌다. 편안함을 넘어, 이곳의 모든 학생들이 교내에서 좀더 확고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자신 있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았고, 스스로도 그렇게 느꼈다.

위의 내가 느낀 바가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미국을 배우는게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더욱이 미국의 Top MBA는 새삼스레 미국의 완벽주의와 합리주의의 정수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 교수진, 학생, 동문, 교직원, 기업, 뭐 하나 엉성하거나 쓰임새가 없는 것이 없이, 이렇게 완벽하게 돌아가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세상에 또 있나 싶다. 

다만 IESE에서의 경험 이전의 나에게 있어, 내가 알고 믿고 있었던 국제화 라는 개념은 너무나도 서툴렀다. 사실 그것은 미국이냐 한국이냐라는 범주의 편협한 구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경험상, 또는 일반 상식상 잘 알 만한 몇 개의 국가만이 내 시야에 있었을 뿐이고, 앞으로의 경력을 고려할 때에도 미국에 편입하느냐 한국에 돌아가느냐, 내 삶의 질을 생각할 때에도 미국이 이러저러 한데 그에 반해 한국은 어떤가. 어디가 더 먹고 살기 좋은가에서 그리 멀리 나가지 못했다. IESE에서 만난 사람들과, 글로벌 리더십을 양성하기 위해 고안된 수업이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내 시야의 밖에 있었 수많은 국가와 그들의 경제, 삶의 양식에 조명을 비쳐 주었고,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수용할 수 있는 열린 자세를 갖게 해 주었다.


삶의 풍요로움에 대해서

유럽에서 약 반 년을 살아 봤다. 그 기간동안 일할 거 공부할 거 읽을 거 쓸거 싸들고 틈틈이 해 가며 나름대로는 참으로 많이 돌아다녔다.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학교 애들을 비롯해서 많은 현지인들도 만났다. 관광 삼아 여행으로 타지를 들르는 것과 그곳에 방 빌려서 출퇴근, 또는 통학하며 사는 것은 여러 모로 다른 경험이었다. 그곳이 얼마나 멋스럽고 아름다운 관광지냐 보다는 좀더 현실적인 관점으로 그 나라 그 장소를 보게 된다. 내가 이 나라에서 향후 살게 된다면 어떨까? 여기서 매일 매일 밥해먹고 출퇴근하고 살만한가? 아이를 낳고 여기서 교육을 시켜서 향후 스스로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하기에 어떨까?

그런데 그 답을 내는데 있어 그 삶의 질의 좋고 나쁘고의 차이가, 또는 내가 살고 싶어지는 나라를 정하는 게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강한 상관 관계가 있지는 않았다. 새삼스런 말이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사는 모습, 그리고 삶의 동기가 있다. 경제력, 이른바 돈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고 의사 결정을 하기에는 많은 다른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4개월 전 스페인으로 날아왔을 때, 나는 바로 그 측면에서 이 나라에 어떤 기대감도 없었다. 재정적인 상황도 고려해서 Flat이라 불리는 단칸방을 빌렸는데, 주변 거리도 건물도 매우 오래되고 낡았었다. 3개월 내에 두 번이나 삶의 터를 바꾸는 통에 스트레스를 받아서도 있겠지만, 아내는 짐을 풀다가 와락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아주 가끔씩 바퀴벌레가 기어나오는 그 좁아 터진 부엌에서 요리를 해 먹고 설겆이를 하는 것도, 음습하고 좁은 욕실에서 샤워를 하는 것도 한 달이 지나니 금새 익숙해진다. 개방적이고 근면한 까딸루니아 사람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 즐거웠고, 스페인의 흥취를 함뿍 담은 음식들이 맛깔났고, 늘 생동감이 넘치던 람브라스 거리로 나가 사람들과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시간이 멈춘 것처럼 행복했다. 종국에는 아내나 나나 둘 다 진심으로 이곳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며칠 전 다시 미국에 돌아와 내 집에 들어서니, 내 집, 내 차, 주변 편의 시설 등 갑자기 모든 것들이 그렇게도 깔끔하고 편리하고 잘 되어 있다. 내가 얼마나 후진 환경에서 지난 4개월을 살았었느냐에 새삼 한 번 놀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불편함을 전혀 인지 못하고 잘 살아 왔었다는 사실에 한 번 더 놀랐다.

사람의 눈높이가 업그레이드는 쉽지만 다운그레이드는 쉽지 않다고 했다. 예전에는 요 정도로도 만족스럽고 행복하던 내가, 이제는 어느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쉬이 성에 차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경력을 고려할 때에도 더 높은 연봉과 직위, 더 좋은 기업같은 지금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옵션만을 찾았고, 좋은 MBA나오고 나면 억대 연봉으로 점프할 꿈을 꾸었다. 그렇게 위만 쳐다보는 게 얼마나 내 시야를 가리고 선택의 폭을 제한하는가를 깨닫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MBA에서의 경험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성찰하고 알아가는 것, 새로운 경험과 영감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가는 것, 사람들로부터 인정 받고 사랑 받는 것과 같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향식 명제에서 되도록이면 자유로와질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지만 물질적인 절하는 생각보다 금새 익숙해진다. 어떤 물리적인 하한선이 있을지언정, 내가 소유한 것들이 내 삶의 풍요로움과 행복감의 척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새로운 잣대로 세계를 본다. 

학생들의 기립 박수와 함께 끝났던 Management Control (대기업과 같은 큰 조직을 구성하는 계열사, 부서, 메니져, 직원들 간의 평가 시스템, 인센티브 구성을 어떻게 설정해야 하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사례를 통해 배우는 수업이다.) 은 내가 MBA를 마치고 돌아갈 조직을 관리하게 된다면 어떻게 관리 시스템을 구성하고 관리할 것인가를 끊임 없이 고민하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게 해 주었던 수업이다. 여기서 소개된 Merchant's Model에 따르면, 작업의 인과관계(Cause and Effect Relationship)와 성과 측정(Result)이 어려워질수록 조직의 관리 통제는 문화에 의존하게 된다고 했다. 바로 조선과 같은 제조업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정말 많은 조직과 사람이 하나의 배를 협업하여 만들기에, 개별적이고도 객관적인 작업 인과관계, 성과 측정이 불가능하다. 지금까지 한국 조선업의 성과는 바로 한국만의 "어떤" 기업 문화, 그리고 그를 창조해내는 리더십이 핵심이었다라는 생각이 들어 이를 주제로 기말 논문을 썼었다. 그리고 BMW의 Franz와도 이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바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내가 깨달은 것은 이렇게 MBA에서 배우는 조직 관리 체계와 기법들이 결국 문화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사실 기업과 사업이 먼저가 아니라, 환경이 문화를 형성하고, 그 문화가 저마다의 독특한 시스템을 만들어 낸거다.

세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기업 문화와 시스템을 갖춘 미국에서 그들을 배우면서, 나 또한 1년여 새에 정말 많이 영향받고 개조되었다. 구구절절 옳은 사고 방식과 합리적인 시스템을 보며 크게 공감했고, 동시에 한국의 기업 문화에 대한 다양한 문제점과 회의론도 내심 재조명해 보았다. 그런데 미국의 그것이 더 선진화되고 효율적이라고 해서 당장 한국의 것들을 다 들러엎고 미국으로 갈아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기업 운영과 관리 시스템의 근간을 이루는 문화화 환경은 쉽게 변하지 않고, 시스템 이전에 그 근간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사고 방식, 마인드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바꾸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 이해가기 위해서는 귀와 눈이 열려 있어야 한다.

어딘가에서 생활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단기간에 정말 여러 장소에서 살아보고, 주말마다 끊임 없이 돌아다니며 새로운 삶의 양식들을 보고 느꼈다. 옮기고 정착할 때마다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낀다. 좋고 나쁜 것들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어떤 것은 왜 이렇게밖에 안 되어 있나 싶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배경에 이유가 있고 나름의 합리성이 있다. 

카이로에서 묵을 때, 현지에서 정치경제학 석사를 수학중이던 숙소 사장님과 긴 밤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왜 그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지, 원하는 바는 무엇인지, 이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식견을 들었다. 그저 가난하고 무질서해 보이던 그들의 삶이 새롭게 해석되고 이해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그 안에 그들 종교와 역사에서 비롯된 나름의 규칙과 시스템이 드러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이해와 체험의 순간이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동안 내가 살아온 환경에서 가져온 나만의 잣대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했었다. 그런 태도로 바라보고 이해했던 내 세상은 비좁고 서툴렀다. 어떤 행동 양식, 시스템이 있기까지의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그 맥락이 나의 것과 다를 수 있음을 온건히 수용하고 이해한 후에 변화를 모색할 일이다. 

위에 소개한 Emerging Economics의 Pedro 교수가 마지막 수업 시간에 우리들에게 말했다. 왜 너희에게 익숙한 나라, 선진국에 진입하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느냐, 더 어렵고 서투르고 엉망인 곳에 너희들의 역량과 투자를 기다리고 있는 더 거대한 성장 가능성과 눈부시게 다양한 기회가 있다. 그곳에서 너희들이 배운 바와 역량을 발휘해라.

좋은 가르침이고, 뜻깊은 경험이었다.

이제 나의 MBA 2년도 슬슬 막바지를 향하고 있다.


Posted by neinu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