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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3.11.25 핀란드에 다시 오다. (3)
Daily Life2013.11.25 22:14


선박의 운용의 에너지 효율 솔루션 개발 협의를 위해 다시 핀란드에 왔다. 이곳은 200명 남짓의 직원에 비상장 중견 IT기업이지만 지난 20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올 수 있게 한 좋은 기업 문화와 탄탄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작년 여름에 인턴십을 할 때부터의 인연이 이어져 이제는 유쾌한 이곳 사람들이 친한 친구가 되었고 사무실은 처가 같이 느껴진다.

편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이들과의 미팅과 업무는 상당히 밀도가 높았다. 하루 종일 내가 지칠 정도로 꼼꼼하고 세심하게 안건을 또 보고 고민하고 검토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똑똑하다. 특히 수리 능력. 아이디어를 조금 설명해주니 자기 방에 가서 5분 만에 엑셀 모델을 뚝딱 만들어 가져오고 꽤 복잡해진 수준까지 기술적인 대화를 따라오는데 어려움이 없다. 모두들 국내에서 공교육을 통해, 과외나 학원이나 유학 없이 공부한 사람들이다. 젊은 이들은 모두 영어에 능통하다. 스웨덴어, 불어, 러시아어 등은 옵션이다.

일과 후 활동도 눈에 띈다. 3시에서 4시 쯤이 되면 대부분의 직원들이 자전거 헬멧과 복장으로 퇴근을 위해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30분에서 1시간 거리를 자전거로 통학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1달의 여름 휴가 때는 요트로 유럽 일주를 하곤 한다. 미국 Red Bull에서 스폰서를 받아 경기를 할 정도의 프로급 스케이트보더도 있고, 곧 60을 바라보는 한 매니저는 얼마 전에 부인과 함께 헬싱키에서 러시아 중국 대륙을 거쳐 북경까지 10일짜리 기차 여행을 했다며 자랑을 늘어놓는다.

아이가 셋씩 있는 젊은 이들이 많다. 네 번째 아이를 예정하고 있는 친구에게 대체 넷을 어떻게 키울 작정이냐 물었더니 둘이나 셋이나 넷이나 (경제적인 차원에서) 큰 차이가 없단다. 충분한 육아휴직과 업무 후 개인 시간, 그리고 대학 전까지 양질의 무상 교육이 제공되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4시 퇴근 후는 제 2의 일과의 시작이다. 취미 생활도 중요하지만 자기 공부(특히 비즈니스나 경영 관련된)를 하는 친구들도 종종 보였다. 그런 일과가 가능한 이곳의 생산성이 부러웠다. 아마 이들처럼 집중해서 일하면 나도 한국에서 매일 하는 일을 4시 전에 끝내고 집에 갈 수 있으리라. 그런데 그걸 느긋하게 저녁 먹고 늦게까지 하곤 했다. 그러고나면 퇴근하고서도 딱히 할 일이 없다. 일과 후 시간이 많지도 않거니와 예측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의 삶의 동기가 연봉과 진급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분명히 느꼈다. 그들이 삶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는지는 일상적인 대화와 (뭘 자랑스러워 하는지 등) 태도에서 자연스레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때로 이들은 그 이상을 한다. 그 책임감과 열정이 그들이 직장 내에서, 또 사회에서 자기가 있는 자리에서의 자긍심과 정체성이다. 제대로 여가를 보내는 모습도 가족을 꾸려나가는 모습도 미국의 합리 주의, 개인 주의와 가족 중심 주의에의 강박스러울 정도의 집착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조금은 소박하게 느껴지는 핀란드 사람들의 보편적인 일상과 청렴함, 책임감과 자존심 등이 이 작은 북유럽 국가의 저력인 것 같다.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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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einume